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충무공 이순신 장군묘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면서 영정을 모신 [[현충사]][* 물론 현충사 경내에도 묘소들이 있는데, 이순신의 셋째 아들 이면과 후손들의 묘 일부가 모셔져 있으며, 삼거리의 이충무공 묘소 옆에도 부모와 형제, 일부 후손들의 묘역이 자리하였다.]와는 같은 아산에 있으면서도 다소 멀리 떨어져 있는 편[* 현충사는 염치읍 백암리, 묘소는 음봉면 삼거리에 위치하는데, 두 지역을 직접 연결하는 대중교통은 없으며, [[45번 국도]] 경유하는 거리가 약 8km에 이른다. 다만, 대중교통도 온양민속박물관 앞에서 환승이 가능하지만, 묘소 앞까지 다다르는 버스는 [[아산 버스 503]]번뿐이다.]이라 만약 묘소를 참배하려면 이곳으로 가야 한다. 현충사와 함께, [[문화재청]] 산하 현충사 관리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, 해마다 봄에는 근처에 자리한 위토에 모내기를 해 가을에 수확하는데, 이 위토는 과거 충무공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다가, [[일제강점기]]에 은행에 저당 잡혀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하였으나, 1931년 5월 13일 자 [[동아일보]]에 '2천 원에 경매당하는 이충무공의 묘소 위토'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나면서 그 어려움이 세상에 알려졌고, 그 다음 날부터 위토를 구하기 위한 성금이 전국 각지에서 답지한 바 있다. 이 과정에서 '충무공유적보존회'가 결성되어 불과 한 달 만에 빚 2272원 22전을 모두 갚았고, 1년여 동안 모인 성금 총 1만 6021원 30전 중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는 현충사를 중건하였다고 한다. 한편 충무공과 동명이인으로 알려진 무의공 [[이순신(무의공)|이순신]]의 묘는 [[경기도]] [[광명시]] [[일직동]], [[광명역]] 인근 야산에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